구우의 뜯긴 수염에 관한 진실
놀이와 수련/정글수비대 2009/03/01 20:36우리 집 고양이들은 저마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방향이 다르다. 내가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구우는 거리를 재는 듯 앞발을 들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점프해서 가슴으로 바로 파고든다. 보름이는 저만치 멀리 거리를 두고 맴돌다가 어느 틈에 뒤에 와 누워 있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하레는 특이하게도 뒤로 다가와 머리부터 핥는다. 그렇다. 다가오는 방법이 아주 다른데 핥으면서 다가오는 녀석인 거다. 머리부터 핥고 어깨를 짚고 가슴팍을 타고 무릎으로 내려와서는 잠시 머물렀다가 다른 호기심을 찾아 뛰어간다.
내가 누워 있으면 조금 움직임이 달라지는데 베게 위로 다가와서는 역시나 머리부터 핥고 그 다음은 얼굴을 핥는다. 이마, 볼, 코 구별없이 마구 핥아 대는데. 특히 공략하는 부분은 바로 입. 입 주변과 입술을 아주 꼼꼼히 핥는다. 그러다 보면 때론 무척 부담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 하레의 침이 입 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
올레에 다녀온 다음 날 아침. 구우는 쭉쭉이를 하다가 내 팔을 베고 누워 있었고, 보름이와 하레는 내 이불 위 왼쪽과 오른쪽에서 종이를 누르는 문진처럼 누워서 다같이 한가로이 늦잠을 자고 있었다.
꼼짝을 못해 피가 등으로 몰린 걸 느꼈지만(?) "평화롭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때 하레가 깨고는 내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시작해 한참 입주변을 가시돋힌 혀로 맹렬하게 핥던 하레. 그런데 갑자기 내 수염을 뜯었다. 예비군 훈련을 받는 동안 귀찮아서 내버려뒀던 입 주변에 듬성듬성 나 있던 수염을 하레가 뜯었다. 얼굴을 피해 보지만 좇아오면서까지 수염을 뜯는 하레. "뭐지, 이 느낌은. 그리고 고양이에게 이렇게 뜯기면 거긴 앞으로 절대로 수염이 나지 않아 마치 원형 탈모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치자 결국 일어나 자리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 "구우의 수염은 왜 늘 꺾여 있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났다. 말짱하고 멋드러진 하레의 수염에 비해 구우는 볼 때마다 수염이 조금씩 조금씩 꺾여 있었다. 꽤나 잘생긴 얼굴이라 생각하는데 자세히 보면 수염이 꺾여 있어 없어 보이는 구. 용과 호가 잠시 집에 있을 때에도 녀석들의 수염이 조금씩 꺾인다는 걸 느꼈었다. 왠지 하레가 의심이 되었지만 물증을 잡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하레가 나에게도 그 만행(?)을 저지른 거다. 그러고 두고 보니 하레는 그루밍을 해도 다른 고양이들이 피할 정도로 얼굴 주변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다른 데는 안 해주고 주로 얼굴, 특히 입 주변을 그루밍하는 하레. 보름이도 격렬한 그루밍이 거기까지 진행되면 피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으흠. 적고 보니 한마디로 그런 거네. 난 오늘 아침 잘 나지도 않는 수염을 하레에게 뜯겼다. 그리고, 또 그런데 요즘 구우의 수염은 말짱하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 ');;

